내가 소주 두잔 정도를 마셨다면, 그 이후 나눈 대화는 거의 기억을 못할 가능성이 높으니 편안히 비밀 이야기를 해도 된다.
기억은 거의 휘발되고 일부 나와 관련된 기억들만 조각으로 남아 있게 된다.
2019년은 술을 마신날을 한손으로 꼽을 수 있다.
마신다 해도 맥주 반잔, 와인 한잔 하는 정도로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다.
초반에는 다이어트 때문에 술을 못마셨고, 그 이후는 이가 말썽이라 치료받는 동안 염증 관리가 크리티컬해서 마시지 못했다.
치료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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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마지막 금요일이었다.
운동하며 만난 두 아가씨와 저녁을 먹고 한잔 하며 수다를 떨기로 한 날이다.
A는 쾌활하고 착한 교사. B는 개구쟁이같은 캐릭터에 술 좋아하는 엔지니어.
A는 먼곳에 외근을 갔다가 서둘러 출발해서 약속시간보다 한참 일찍 약속장소에서 기다렸다.
B는 근무지와 집이 약속장소에서 멀어 차를 한참 밟아 달려와주었다.
나는 무슨 흥이 그렇게 났는지 술을 많이 마셨다.
A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맥주 한잔을 마시고 먼저 일어났다.
즉 B와 둘이서 새벽한시까지 소주 다섯병을 나눠마셨다.
마지막 한병은 주문하는게 아니었는데.
졸지에 폭음한 그녀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다.
조각난 기억만 조금씩 남아있고 지금도 계속 조각기억이 떠오르고 있다.
너무 좋아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과음을 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기억은 희미하고, 무드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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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모임은 약속을 잡기 전부터, 또 날을 잡고나서도 내내 설레어 했던 모임이다.
그래서 미니어처 소주와 화장품 세트가 포함된 선물을 두개 준비하고 손으로 엽서도 써서 넣었다.
아, 그런데 A도 크림과 립밤을 준비해온게 아닌가.
나만 설렌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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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아름다우나 숙취는 그렇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너무나 깔끔한 컨디션에 놀라워하는 것도 잠시였고, 움직이기 시작하니 울렁거림과 두통이 점점 심해졌다.
그래도 예상보다는 괜찮아서 오전에 장도 보고 왔지만, 결국 숙취해소 약을 사다먹고 오후 내내 누워있다시피 했다. 정말 웃긴 일이다.
누가 먹이지도 않은 술을 기분 좋게 퍼마시고 다음날 그 보상을 해야하다니.
게다가 잇몸에서 또 피가 나고 있다. 정말 내가 미친짓을 했구나 싶었다.
다시 한동안 술을 마시지 못할 것이다.
웃을 수 밖에.
어제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비슷한 짓을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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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다행이다 싶은 것은, 이야기 듣기를 즐기게 되었다는 점이다.
들을 이야기가 참 많고 사람을 알아가는게 참 즐겁다.
이전까지 아무 관계 없이 각자의 삶을 살던 사람들이 우연한 계기로 만나 스토리를 나누어 갖는 그 과정이 정말 신기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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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나는, 술을 두잔 이상만 마시면 더할나위없이 입이 무거운 사람이 된다.
어떤 속 이야기를 해도 듣고 잊어드립니다.
편안히 이야기 하세요.
내 이야기도 들었다면 잊어주세요. 털어놓고 싶은 비밀이 많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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