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생각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생각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9/12/04

누군가의 연예인

나만의 연예인이 몇 있다.
같이 운동하는 멤버, 백엔드 개발자, 한 스타트업 대표, 방송에 나온 그 누구.

남자친구도 아니고(무엇보다 남자가 아니고), 머리에 가슴에 담고 살다가 종종 메시지를 주고받는 분이 있는데, 기분이 참 묘하다. 좋은 방향으로.

연락이 닿으면 닿는대로 가슴 한켠이 뜨끈하고, 또 소셜미디어같은 곳에 올라오는 사진을 봐도 훈훈해지는 그런 사람들이다.

나의 연예인들.

--

갑자기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이름을 봐도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다가 몇 분 후 아! 하며 떠올랐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소식을 주고 받았다.
내 카카오톡 프로필을 보고, 인스타그램도 훑어 보았다 한다.

그이에게 내가 연예인 같은 존재라 했다.

나도 누군가의 연예인.

--

나의 연예인이란 건강보조제 같은 존재다.
없어도 사는데 큰 지장 없지만 있으면 든든하고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2019/12/02

촉, 그것은 빅데이터

월말 투자금 집행 예정인 건이 있었다.

무슨 예감이, 불안한 예감이 있었다.
당일 집행이 되었는지 오후에 꼭 확인해 보아야 할 것 같은 촉이 왔다.

--

놀랍다.
재무팀에서 담당자가 이 건을 누락시키면서 오후까지 집행이 되지 않아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금요일이라 주가 바뀌고, 월말이라 달도 바뀌고 납입되게 생긴 것이다.
지구가 멸망하는 재난이야 아니겠지만 난리는 난리다.

한바탕 소동이 있고, '오늘 아니면 안된다, 오늘 반드시 해달라.' 라는 나의 고집스런 요청으로 은행 마감 10분전에 무사히 투자금이 집행되었다.

외근 중이었는데 이것 저것 대응하느라 (이슈는 꼭 여러개가 한번에 터진다.) 식은땀이 났다.

--

이렇게 촉이 오는 경우가 있다.
감이 묘하면 뭔가가 있다.

누적 경험에 의한 빅데이터 분석이다.

--

사람을 만났을 때, 몇마디 나눈 후 '쎄~한' 감이 올 때가 있다.

도망쳐야 할 때다.

'에이, 기분탓이려니. 에이 설마 그러겠어.'

설마가 사람잡는다.

2019/07/09

미적분 수학문제라도 풀어야 하나

내가 느끼는 (요즘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공포는 '조금씩 녹슬어 가는 것'이다.

고통스럽게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가던 엔지니어의 일이나, 언제나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이슈를 해결하고 게다가 비전까지 현실화 시켜야 하는 스타트업의 일은 너무 힘들어서 벗어나고 싶을때도 많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황을 벗어나자 이제는 내 활시위가 느슨해지고, 미어캣처럼 목빼고 살피던 나의 '촉'도 무뎌지는 것 같아 너무나 공포스럽다.

내 머리를 가만히 두고싶지 않다.

몇년전 중고등학고 미적분 수학책을 산 적이 있었는데, 뇌가 기어와 톱니로 이루어진 양 자꾸 쓰지 않으면 굳는다며 문제를 풀겠다고 산 책이다.

전략적 사고를 하거나 문제를 푸는 내용의 책은 이미 몇권 가지고 있는데, 결국 아침마다 집어드는 책은 소설, 산문, 여행기 등 쉼을 위한 책이다.

투자검토보고서 쓸 것이 줄을 서 있는 이 상황에 일을 하면서 뇌를 괴롭혀도 되겠지만 루틴에서 벗어난 자극을 계속 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과 공포는 항상 눈썹위를 떠다닌다.

--

한편 한없이 게을러지고 싶은 마음과 늘어진 내 상태가 편안하기도 한 대기업 월급쟁이다.

2019/04/16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다니고 싶은 만큼 다니는 행복

제목은 '행복'으로 끝났지만 어둠의 기운을 품고 사는 나는 역시 그 반대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요즘 이 치료중이다. 치과가 정말 지겹다.

10년에 한번 이가 큰 돈을 해먹는 패턴을 보였는데 그 간격이 좁아졌다.
불과 몇년전에 수백을 들여 신경치료, 크라운, 보험이 되지 않는 백만원짜리 희한한 종류의 스케일링을 마치고 이대로 50까지만 잘 썼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역시 찜찜했던 예감은 사실이 되었다.

몇년전에 어쩐지 필요한 치료보다 비싼 치료를 권하는 느낌이었는데 신경치료를 다 마친 치아 양쪽 네개는 몇년만에 거의 못쓰게 되었고 정기검진, 스케일링을 받으며 늘 관리했던 이 상태도 확인해보니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대학병원에서 검진하고 엑스레이 찍고 이상하면 달려가서 또 검사했는데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나는 시린데 시릴리가 없다는 의사 말에 대체 뭐라고 대응을 해야할까.

키, 시력, 치아건강 같은 것은 유전적인 요인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나는 눈도 나쁘고 체구도 작고 이와 잇몸과 이를 떠받치는 뼈도 아주 불리하게 태어난 것 아닐까.
우리 엄마는 임플란트를 실패하고 결국 틀니를 사용하고 계신다.

...

불행중 다행인 것은 내가 '못먹으면 다른거 먹거나 안먹지뭐' 하는 식으로 식탐이 많지 않다.
음식은 점점 부드러운 것으로 바꾸거나 작게 잘라서 우물거리다 삼켜버린다.
못먹는 것은 안먹고 있다.

그런데, 밥블레스유 같은 방송을 보다보면, 여행다니면서 또 반가운 친구들과 만나서 맛난 음식 먹고 수다떠는게 참 즐거울 수 있는데, 이 재미에서 열외가 된다고 생각하니 내 삶의 질이 떨어진 것인가 싶은 서운함도 있다.

체중을 줄이는데 성공하고 두 다리가 (특히 허벅지가!) 튼튼해지도록 수영을 열심히 하니 걷는 것은 두렵지 않다. 이제 상체 근육을 만들어서 짐이 두렵지 않게 살고 싶다.

그런데 이는 어쩌나. 노력한다고 되는게 아닌 것을.

...

사람이 행복하게 살다 죽는데 필요한게 너무 많고, 하루하루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게 너무 귀찮고 번거롭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문제들이 일상을 어지럽히는데, 의료 인프라가 갖춰져있지 않은 곳은 오죽하려나.
선진국이고 개발도상국이고 간에 비효율적 시스템이 의료의 질을 떨어트리는 경우는 허다해서 부자나라 간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이런 문제는 왜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역시 오래묵은 적폐가 갑인가.

결국 의료는 우리나라 좋은나라.

...

내가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을까.
이렇게 정신이 난잡해지면서 신점이나 보러갈까, 올해 운수가 어떠려나 하는 바보같은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게 다 치과진료 때문이다.

효과적이지 못한 '느린 호흡의 스텝 바이 스텝'

나는 성질이 아주 급하고 몰아쳐서 무엇인가를 한 다음 성과를 보고 싶어한다.
그 성과가 작든 크든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진보가 있어야 다음 몰아치기가 가능하다.

일종의 '스프린트st 인생' 인 셈이다.

요가 8개월 후 수영 7개월을 했는데 다시 운동 정체기가 왔다.
progress 를 실감 할 수 없게 되었다.

--

체중 감량을 하면서 근육량 손실은 거의 없었고 (워낙 근육이 없기도 했고) 체지방 감량 위주다.
즉 각종 문제가 있음을 인지 -> 요가로 간신히 활동 가능한 몸으로 만들기 -> 조금 더 활동량을 늘리기 위해(물론 맥주병 해결 미션 포함) 수영으로 종목 변경 -> 문제의 원인이었던 체중 해결 -> 근육 만들고 기초체력 단련이라는 다음 목표 설정.

그래서 킥복싱 시작.
격투기 종목 하나 정도 해 보겠다는 것은 아동이었던 먼 옛날부터 나의 숙원이었는데 드디어 진입했다.

운동의 동기는 갑자기 불어난 무게를 이겨보려는 의도였는데, 자유형이 가능해진 시점부터는 식이 조절 + 운동 + 몇가지 측정을 병행했다. 최종 감량은 최고 체중의 거의 25%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로 나는 내 급한 성질을 꼽는다.
목표 설정 - 노 익스큐즈 - 성과를 늘 확인하고 피드백 루프 - 반영

--

'급격한 체중변화는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꾸준히 덜먹고 운동하며 건강을 유지하는 체중관리를 해야한다.' 맞는 말인데, 이 꾸준히가 얼마나 꾸준히며 얼마나 적게 먹고 어느 정도의 운동량을 확보해야 할지, 구체적인 실행 방법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공자님 말씀이다.

'담배를 한번에 끊는 것은 매우 어려우니 조금씩 줄이면서 결국은 끊겠다.' 만큼 말이 안되는 것 같다.

그리 대단한 미션은 아니었지만 체중감량 성공의 이유는 빠른 진행과 measure 가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

목표를 달성하기위해 꾸준한 노력과 점진적 발전이 있어야하며, 습관으로 만들면 후에 굉장한 진보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자기계발 서적이 참 많다. 내 경험에 의거하여 말하자면 안된다.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

문제는, 이게 가능하게 하려면 내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는 목표의 당위성과 동기부여가 가능해야 한다는 건데 그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리드 타임이 길다.

근래 해야만 하는 중대한 목표 비슷한 것이 생겼는데 난항이다.

확실히 나를 설득할 수 있는 목표 세팅과 액션 아이템을 뽑는데 보름이상을 소요하는 중이다.
아니 솔직히 당장 뭘 해야 할지는 알겠는데 엄두가 나지 않아서 '미루기'를 시전 중이다.

이것 참 바보같다.

그렇지만 나는 (주위의 온갖 훼방을 무릎쓰고) 또 결국 해내겠지. 아니면 나가떨어지거나.

2019/04/09

20190406 어느 토요일의 일상


예스24의 구매자 굿즈인 벚꽃 변색 머그. 
뜨거운 차를 담으면 하얗게 변한다. 그리고 온도가 갑자기 차가워지면 붉은 빛으로 변한다. 갑작스런 온도변화에 반응하는 것 같다. (담긴 음료는 맥주가 아니다. 모종의 연유로 요즘 술 못마신다. 단 한잔도 마실 수가 없다.) 
요즘 딸기음료에 꽂혀서 지난주 이틀은 딸기우유를 맛있게 마셨고,  토요일 출근하면서 생크림이 들어간 것을 사봤는데 달고 시럽이 싫어서 반도 못먹고 버렸다. 나는 찐득한 단맛을 참지 못한다. 

후다닥 일을 마치고 나와 중고서점에 들러 책 몇권을 사고 대형서점에도 들렀다. 
집에 있는 책장과 문구 보관함을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집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있어서 더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늘 상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실 벽면을 다 채우고 있는 산더미같은 책이 줄어들기는 커녕 늘어나기만 한다. 


김훈의 새책이 나왔고 나는 그의 단단한 문장을 좋아했다. 샘플북이 서점에 있길래 한권 가져왔다. 문장은 여전하지만 역시 다시는 그의 책을 사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호불호가 명확해지니 불호를 일상에서 도려내기가 쉽다. 
집에 도착해서 입욕제를 푼 더운 물에 반신욕을 하고, 드디어 구매에 성공한 편의점 꼬막 비빔밥을 맛있게 먹은 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근래 심각해진 의욕상실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보자. 사방에서 직간접적으로 기운을 뺀다. 멍청이와 얌체, 머리 나쁘고 탐욕스런 인간들. 이 종류의 불호를 내 삶에서 도려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강원도에 큰 불이 났고, 무료하리만큼 평화로운(아니 그 내부는 평화롭지 않은 것이 분명하지만 해일은 아닌 파도와 같은) 내 일상이 또 미안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다시 ‘나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 에서 멈췄다. 
재난구호 기부라도 하련다. 
그 외에도 정의롭지 못한 일이 여전히 정의롭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나는 세상을 바로잡을 수 없다. 

사소하게 술을 못먹는다고만해도 내가 사회생활을 잘못하는 것인양 꼬집고 평화를 깬다. '대수롭지도 않은 이유로 감히 분위기를 깨?'

내 일상은 너무나 당연하게 되풀이 되지만 또 너무 쉽게 깨진다. 
그래서 일상이 소중한가? 전혀 그렇지 않는다. 
일상이 유지되는 것이 0의 상태라면 일상이 깨지는 것이 마이너스로 비정상적인 일이다. 역시 쓸모없는 고마움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건조함이 나에게는 가장 건강한 상태다. 

건조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2019/03/25

회사 음악앱에서 플레이리스트 편집을 하다가 화낸 사연

회사 음원 플레이 앱이 있는데, 비교적 새로나온 서비스다.

오랜만에 듣고 싶은 아티스트 음원이 있어서 몇명의 앨범을 찾고 다운받고 플레이리스트를 편집하고 있는데, 시도를 하다가 완전히 빡이쳐버렸다. 

뭐 복잡한 걸 하다가 그렇게 된건 아니고, 버젓이 메뉴가 화면에 도출되어 있는 기능을 쓰고 있었는데 2스텝을 못넘어가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 제목을 편집하고 곡을 선택하니 고쳐놓은 제목이 디폴트로 되돌아갔다. 
- 그렇다 치고 또 열심히 곡 선택, 제목 수정을 반복한 후 저장을 하고 싶은데 어디에도 저장버튼이 보이지 않는다. 
- 그냥 돌아가면 저장된건가? 싶어서 엑스 누르고 빠져나가니 완전 헛수고 했다. 다 날아감. 

알고보니 위에 바 형태로 뜬 메뉴가 저장 버튼을 가린 것이다. 아주 흔적도 없이 가리고 당겨도 내려오지 않는 위치 고정 '저장' 버튼이라 방법이 없다. 

- 이런 기본적인 테스트를 안하고 라이브 서비스를? 
- 유저가 별로 없나?
- 제보 받고도 처리 안했으면 엄청나게 바쁜가? 

모바일 서비스를 이용하다가 사소한 이용 오류가 있으면 그럭저럭 이해하고 넘어가는 편이다. 고치겠지, 꼬일수도 있지, QA 가 놓쳤나보지, 하면서. 

근데 이건 너무 기본적인 플로우에서 나온 오류다. 개발하면서 테스트해도 충분히 나올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대체 왜 그런걸까.
아이러니하게 동료라고 생각하니 제보를 못하겠다. 

2019/02/18

불행을 전시하고 증명하고 구경하는 사람들

며칠전 강남역 지하를 통해서 버스정류장으로 이동중이었다.
추운날이었고 나는 점퍼 모자를 뒤집어 쓰고 있었는데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뭔가 소동이 있는 듯 시끌시끌 했다.

워낙 빠르게 지나간지라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이 "아니.. 아니.. 사려고 했는데.. 사려고 했는데요.." 라고 끝나지 않는 문장을 말하고 있고 상점 관계자인듯 보이는 둘이서 그 사람을 붙잡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옷가게 물건을 그냥 가져가려다 잡힌 절도미수로 추측되는 상황이다.

그보다 내가 인상적이었던 건 뒤에 우루루 부채꼴로 몰려 서서 핸드폰으로 그 장면을 촬영하던 사람들이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난지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가 있었다.

버스를 타며 생각해보니 소름이 돋는다.

------

제목이 자극적인 기사가 조회수가 높단다. 당연하겠지만 불행할수록, 야할수록, 잔인할수록 사건의 본질에 관계없이 주목을 끈다.
왜 그런 끔찍한 기사를 찾아 읽고 공유하냐고 하자 '무섭고 끔찍하잖아요.' '선정적이잖아요.' '궁금하잖아요' 란다.

정말 나로서는 이해가 어려운 종류의 동기부여다.

평소 관심사라면 모를까 도대체 왜.
게다가 조회수를 올려준다는게 또 저질 제목의 선정적 기사를 낳는다는 것을 알면서, 기레기라고 욕만했지 행동은 그 반대라는게 참 이율배반적이다.

------

트위터에 그런 일이 있었다.

본인이 이제 더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라 살 수 있는 날이 며칠 남지 않은것 같으니 맛있는 것을 실컷 먹고 가고싶으며, 음식을 추천해줬으면 한다고.

이때 많은 사람들은 정말 맛있었던 음식을 추천해주고 응원했고,
어떤 사람들은 쇼하지 말라며 증명을 하라 했고,
어떤 사람은 다이렉트 메시지로 죽을 날로 예상되는 날이 자기 생일인데 재수없게 그런 소리를 하냐고 항의를 했다.

이 사람은 미안하다며 더이상 트윗하지 않았다.

..정말 기가 막혔다.
설사 거짓말이고 쇼라고 한들, RT타고 올라온 글을 본 본인들에게 무슨 손해가 있다고, 그저 맛있게 먹은 것을 추천하고 응원한마디 하면 될 일이었는데.

며칠 후 (사실여부는 당연히 모르지만 나는 믿고있다.) 동일 계정으로 그의 가족이 사망소식을 알렸다.

------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모두에게 인간 본성에 역행해야한다고 우기는 것인지, 사람은 다 그런데 난 더 품위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자부심을 갖다못해 우월의식을 갖고 사는지.

지금은 전시상황도 아니고 민주주의, 자본주의, 선진국에 살고 있으니 시민으로서 품위를 지키고 얼굴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상호 최소한의 선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각자의 선이 얼마나 다른가?

------
본 글에 틀린 점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궁금합니다.

2018/07/11

그릇 작은 것과 허세는 개선 방법이 없다.

그리고 이상하게 이 둘은 같이 다니는 것 같다.

그릇 작은 사람이 허세를 달고다니는 것 같다는 뜻이다.

뭐라 알려주기도 뭐하고, 눈치껏 알아채주기를 바라기도 어려운, 참 안그런 것 같으면서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이다.

대표나 리더들 중에 본인은 티가 안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옹졸한게 너무 드러나고, 은근히 고민과 함께 밖으로 비추는 것들이 허세가 껴있고.

2018/07/02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것

아프리카에 봉사활동을 여러차례 다녀오기도 한, 한 영화배우가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고 글을 썼다.

그에 대한 반박으로 (논리를 풀어가기 위해 한가지 예를 들며 성의있게 쓴 글이었지만 요약해보자면) 영화배우가 그 사람들이 사는 환경에 노출되지 않을 것이고 결국 서민들이 대상이 될 것이라는 요지의 글을 썼다.

어느 정도의 Jump 일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몇년 전, 나는 대림역 인근에 살고 있었다.
그때 여고 동창 몇명을 만나 오랜만에 브런치를 하고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내가 사는 곳이 평화롭고 좋다.' 고 했더니 단칼에 분당에서 아들을 둘 키우는 친구가 '그런 차이나 타운에서는 애 못키운다.' 라고 했다.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에는 아기도 있었고 어린이도 있었고, 젊은 부부, 아기를 데리고 산책 나오는 노인 등 말그대로 평화로운 아파트 단지였다.
몇발짝 떨어진 곳에는 중국 동포와 중국인들이 많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 나름대로 식재료 판매,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서 맛있고 저렴한 곳이 아주 많았다.
양꼬치 식당도 지금까지 가 본 곳 중에 최고였고, 요즘 유행하는 훠궈나 마라탕 집도 그때 이미 여러군데 있었다. 시장에 놀러가는게 나에게는 즐거운 산책 같은 것이었고, '차이나 타운'이라서 '위험하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적이 없다.

물론 사건이 없지는 않았다.

지하철 한정거장 떨어진 시장에서 중국동포들 간 칼부림이 나서 사람이 죽기도 했지만, 아무에게나 칼을 휘두른 것은 아니었고 오랜 싸움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자정활동으로 팀을 꾸려 안전한 곳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노력덕인지 위협적인 느낌은 전혀 없었다.

차이나 타운이라고 지역 자체를 폄하한 동무와는 아직 만나지 않고 있다.
새로 유입된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밖으로 드러난 부정적인 면으로 인해 오해를 한 것은 더 설득이 필요한 부분이겠지만, 낯선 것이 유입된(받아들인?) 지역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굉장한 무례였다.

난민 수용, 거부에 아주 많은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낯설다는 것과 오해에 의한 부정은 아니었으면 한다.

난 구로, 대림에서 참 잘 살았다. 맛있고 저렴하고 재미난 중국 음식도 좋았다.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주를 하건, 살 곳을 찾아 표류하다 정착하건 문제는 이질적인 종교나 문화가 유입이 된다고 서민이 청담동 사는 영화배우는 겪지 않을 대단한 불편함에 노출 되는 건 아니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