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더미 같았던 책은 거의 다 버리고, 고향집에는 절대로 못버리는 내 애장품들만 소량 남았다.
미취학 아동이었던 시절의 기억중 가장 강렬한 기억은 다락이다.
어디서 얻어왔는지, (아마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촌들에게서 많이 구해왔겠지만) 다락에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책이 꽤 많았다. 오래되고 표지가 떨어져나간 청소년 잡지도 있었다.
거의 처박혀서 나오지도 않고 종일 읽었고, 읽은 것을 잊을 때 쯤 또 꺼내 읽었다. 어두워도 읽고 자기 전에는 누워서 읽었다.
그 덕에 글씨도 크고 내용이 축약된 어린이용 도서는 거의 읽지 못하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안네의 일기를 찾으러 서점에 갔다가 점원이 어린이 용을 내밀어서 어이 없는 표정으로 바라본 적도 있다. 그렇게 내용을 다 잘라놓은 책은 애초에 볼 마음이 없었다.
어린이 문고는 '다렐르' 시리즈나 '아나스타샤' 시리즈 같은 것으로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3학년부터는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고향에 남아 있는 책은 아주 오래된 것들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출판된 책도 있고, 나와 나이가 비슷한 책도 있다.
지금과는 표기법도 다르고 제목도 달라진 책이 많다. 그리고 요즘은 구하기 힘든 책도 있다. 새삼 종이가 기록에 얼마나 적합한 발명품인가 생각해 볼 때도 있다.
지금은 참 책을 쉽게 산다.
보고 싶은 책 사볼 정도의 경제력도 되고, 출판되는 책도 워낙 많다.
예전에는 신간 소식을 신문 지면 광고로 보다보니, 광고를 오려서 서점에 들고가 책을 찾아달라고 하기 일쑤였다.
책을 하도 많이 읽어대니 용돈 대부분은 책값으로 들어갔고, 가뜩이나 가난한 집에 (공부에 도움도 안되는) 책만 읽어대는 내가, 엄마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글을 읽다보니 글을 쓰게 되고, 그러다보니 하루가 멀다하고 백일장에서 상을 받아왔는데 별로 환영을 받은 기억이 없다.
전국대회 장원도 했지만 반응은 비슷했다.
책을 많이 읽다보면 부작용이 있다. 옳고 그른것을 구분하려고 한다.
틀려먹었다 싶은 것은 고개를 돌리거나 거품을 물고 대들었다. 많이 싸웠다. 타협하고 싶지도 않았다.
마흔이 된 지금, 그 다락이 그립지는 않지만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다.
덕분에 책도 많이 읽었고, 혼자 보낼 수 있는 피난처가 있어 좋았다.
--
그리고 보고 싶은 책을 마음만 먹으면 사서 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월급이 고맙다.
글쓰기 창을 열었을 때, 내가 원래 쓰려고 했던 글은 '잽에 날아간다.' 였다.
일하느라 에너지를 쓰고 스트레스를 받고 아웃풋을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잡스런데 화가 나고, 짜증받이가 되는게 너무 싫어서, 그에 대한 글을 써보려했는데,
에라. 월급쟁이, 월급 날짜맞춰 잘 나오면 책사보고 밥사먹고 저금하는 낙으로 살지, 그따위 잽은 맞아주마. 안그래도 운동하면서 맨날 맞는 걸.
어떻게 하면 책을 좋아할 수가 있는 거야? 방법이 뭐야??? 비결을 알려 줘!! 제발~!
답글삭제새삼 종이가 기록에 얼마나 적합한 발명품인가 생각해 볼 때도 있다. => 나는, 누가 이렇게 기가 막히게 맛있는 음식(만두)을 만들어 냈나... 하는 방향으로의 생각뿐...ㅋㅋ
뭐라도 감탄하며 살면 좋지 뭘.. 그리고 책은 재미있어야 해. 재미있는 걸 골라서 읽고 재미없으면 당장 던져버려.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