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4

40대를 시작하는 글

2019년 초입에서.

이맘때가 되면 글 잘쓰는 분들이 모두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는 글을 쓰고 난 즐겁게 읽는다.
올해는 나도 글을 하나 쓸텐데, 나는 시점이 30대를 정리하고 40대를 맞는 10년짜리 소재다. 
글을 잘 못쓰는 허점이 여실히 드러날텐데 아무렴 어떠하겠습니까.

그렇다. 마흔이다.

매우 신난다. 

…

정말 엿같았던 20대, 조청같았던 30대가 가고 40대가 왔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40대는 신나겠지, 기대해본다. 
시간은 연속적인 것인데 단위로 끊어가는 것이 무슨 소용이랴만은.

* 나의 30대를 summary

  - 커리어

    - 20대를 바쳐 번 돈으로 학위를 하나 더 받았고,
    - 세 번, 각기 다른 역할의 조직을 0에서 1로 빌드업했고,
    - 각기 다른 산업에 적용되는 플랫폼을 두번 만들어 올렸으며 대량 트래픽도 받아내보았고,
    - 다른 산업군에 있는 회사로 몇번 이직했고 이력서를 고쳤다.

  - 개인사

    - 가정을 꾸리고 세대주가 되었다.
    - 수차례 트랙을 달렸고 아마추어 레이서로 등록했으며,
    - 드디어 유럽을 (출장이 아니라) 여행했고,
    - 중국어공부를 두번 시도했고 지금 재시도하는 중이다.
    - 응급처치와 심폐소생술 교육을 수료했고,
    - 일상에 운동하는 시간을 할당하고 수영을 할 줄 알게 되었다. (허우적대고 있다.)

  - 세금과 별개로 사회를 위한 활동

    - 세번째 두발기증을 했고, (소아암 환자의 가발을 만들어주는 훌륭한 가발회사가 있다.)
    - 정기 후원을 시작했다. (한국 유니세프는 시작했다가 재단에 문제가 많아보여서 취소하고 굿네이버스로 다시 시작)
      20대 때는 봉사활동 대장을 했는데 이젠 돈을 내고 있다. 나에게 이 의미는 경제적인 여유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다. 더 여유가 생기면 금액을 늘리거나 건수를 늘려갈 생각이다. 후원이란 수도광열비, 식비와 같다. 나에게 절대 줄일수 없는 최소 생계비, 복지비가 존재하듯이 나는 누군가의 최소 생계비와 존엄을 위한 복지에 후원한다. 한번 시작하면 그만 둘수는 없다. 
      저출생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려면, 태어났음에도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유아청소년을 함께 고려하는 정도의 노력은 했으면 한다. 


  - 그리고 많은 것을 알았다. 

    -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나를 쥐어짜며 지켰던 것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서 버렸고,
    - 주변에 정말 중요한 사람들과의 연결이 훌륭히 유지되고 있으며,
    - 세상사는 자신감도 조금은 더 생겼고 예전만큼 불안하고 우울하지는 않다.
    - 싸움을 할 때 더 거칠어졌으며 남의 눈치보지않게 되었다.
    - 실수나 무능을 자각할때마다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던 것과 달리, 다 유능할 수 없고 실수도 할 수 있다며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졌다.
      매번 괴로워하기에는 나는 너무 무능한 부분이 많고 실수도 제법 해서, 용서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수가 없어 그렇게 된 것도 있다. ㅎㅎ


* 나의 40대 : 일단 지금의 목표


  - 커리어

    - (지금 다니는 회사를 무척 좋아하지만) 대기업은 권한도, 영향력도, 할 수 있는 일도 없다시피 적고, 안되는 것만 많아서 힘빠진다.
    - 설득할 기회도, 설명할 기회도 충분치 않고, 심지어 높은 분들 스타일에 맞춰서 설명하느라 힘만 빼고 실행은 안될것 같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나 생각도 들지만 해볼기회도 없다.
    - 일을 만드는 나의 스케일은 작지 않고, 회사가 부여한 나의 권한은 0에 수렴한다.
    - 6개월이나 있었는데 이력서를 어떻게 업데이트를 해야할지 모르겠다.
    - 그러나 나에게 아늑한 책상과, 각종 복지와, 매달 급여와 시간외근무수당, 훌륭한 동료들, 무엇보다 아주 훌륭한 명함을 줬기 때문에 위 어떤 이유도 내 충성심에 위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잘하고 싶다. 돈 많이 주는데서 오라고 하지 않는 이상 오래 다니고 싶다.
    - 15년+4년(학부때도 일을 했다.) 가량 많은 일을 했고, 고통스럽게 챌린지 할 수 있는 체력도 의욕도 물론 지금 충분하지만, 이사람 저사람 만나다보니 질려서 집값 싼 곳에 널찍하게 일터 만들어두고 작게 장사하면서 밥이나 먹고 살고 싶은 생각도 있다.
    - 따라서 현재로서는 커리어의 목표는 세우지 못하겠다.

 - 개인사

    - 체력을 만들어서 몽골과 중국 여행을 하고싶다.
    - 중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는데 열심히 해서 여행하고 대화 가능한 정도로 잘 하고 싶다.
    - 날씨 좋은 휴양지에서 풀빌라에 묵으며 돈지랄 한번 해보고싶다. 수영도 하고. 한 번도 그런 휴가는 가보지 못했다.
    - 두종류 정도는 더 운동을 배워보고싶다. 그중 하나는 격투기(복싱류)였으면 좋겠고 나머지 하나는 지금 생각에 테니스를 다시 하고 싶다.
    - 지금도 ‘동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다른 이들에 비해 넓은 편이지만(20대~70대), 더 다양한 친우를 만나고 싶다.
    - 정기후원을 늘려나갈 것이다. 단 재단의 비리가 조금이라도 밝혀지면 즉시 중단한다.
      동물복지에도 관심이 많다.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은 사람을 학대하기 전단계에 있다고 생각하며 동물도 행복한 세상의 사람이 행복하다고 확신한다. 이것은 최소한의 생명에 대한 존중을 의미한다. 
      다음에 '작지만 중단하지 않을 후원의 대상'은 국경없는 의사회같은 단체나 멸종위기 동물 보호단체, 유기 동물 보호단체로 정하게 될 것 같다. 
    - 에세이 혹은 사무실 SF 류(?)의 단편 소설을 써보고 싶다.
    김초엽 작가나 장류진 작가의 글을 최근에 아주 재미나게 읽었는데 기성 작가와 다른 읽는 재미가 있었다. 나는 그런 재능있는 스토리텔러가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의 씨니컬한 마음의 온기(상상에 맡긴다.)를 담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제목은 '거의 망한 사회생활이야기' 정도 되려나.. '아무리 열심히 살아봐라, 원하는대로 되나' 가 되려나    

  - 그리고 스스로를 치켜세우며 살기로 했다. 

    - 겸양이 미덕이던 시대는 자본주의가 세상을 점령하면서 끝난 듯하다.
    - 겸손한 사람보다 별 것 없는 것이 다 드러나도 스스로를 내세우는 사람의 성취가 크고, 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빈깡통을 식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 더 큰 이유는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나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밖으로 내보이며, 상당수는 내 노력과 공을 가리고 묻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몇가지 찌질한 이유로.
    - 내가 나를 세우지 않으면 다른 이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다.
    - '더 잘난척하고 살자.’ 새로운 40대의 슬로건.  

평화를 추구하고 늘 생명을 존중하지만, 싸울 일이 있으면 싸울것이고,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잘난 40대를 시작해본다. 

당신도 나도 건승합시다.

2019/01/03

꼰대탄생의 한 시나리오

종종 열 몇살씩 어린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내 지난 커리어에 대해 궁금해하면 예전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이런것 하다가 이러한 일이 있어서 이런 일로 바꾸고, 퇴사를 하고, 공부를 하고 등등.. 

나 : ‘그때 이런 일이 있었는데 말이지..’
동료 : (… 눈을 크고 동그랗게 뜨고) ‘그런일이 있어요? 정말?’ 
나 : (헙..) 아 ㅇㅇ 그때는 그런일도 있었지.. 

…

바로 이순간이다. 

예를 들어, 옛날에 부장이 사무실에서 담배피고 재떨이 던지는 이야기를 하면서 ‘요즘 그런 사람 없잖아. 너네 회사 편하게 다니는거야.’라고 하면 바로 꼰대탄생이다. 
’내가 고생하고 살았는데, 내가 10년찬데, 1-2년차들은 아직 안겪어봤겠지만..’
… 재떨이 던지면 도로 집어서 머리에 꽂아버리지 겁쟁이처럼 그 꼴을 왜 당하고 살았느냐 물으면 뭐라고 답할텐가. 

세상은 늘 변하고, 시대가 변하고 사람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선구자가 큰 변화를 이끌기도한다. 
그러면, 내가 겪은 문제나 불합리한 것들은 사라지겠지만 그 자리에 다른 문제가 자리를 잡는다.

즉, 그들은 내가 겪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나는 그들이 겪은 새로운 문제가 왜 문제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단편적인 예로 나는 학교에서 단톡방 지옥에서 왕따를 당해본적이 없다. 
그땐 삐삐도 없었으니까. 
‘야, 그따위 방 나와버리고 다 차단해버려!’ … 모르는 소리. 

…

아 상황이 다르구나, 로 생각해야지, 너네는 그런 문제도 안겪고 팔자좋다, 살기좋은 세상이네 하면 단절이다. 

…

유사품에 주의하세요. 

‘결혼을 하면 알게 될텐데, 애를 낳아봐야 이해 할텐데, 애가 둘이 되면 상황이 완전 달라지고.. ’

혼인을 해야 아는 사람도 있고, 안해봐도 세상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도 있고, 애를 낳아봐야 아는 사람도 있고, 애를 낳아도 모르는 사람도 있다.
혼인 안한 인생을 그는 모를 것이고, 아이 없는 생활도 어떤 모습일지 망상으로만 떠올렸기 때문에 주로 오해로 가득하다.
누구나 다른 모양이지만 짐을 지고 산다. 내 짐이 잘생겼으니 존경해달라고 말하지 말아야지. 

세상은 내가 겪은 일 보다 겪지 않은 것이 더 많고, 아는 것 보다 훨씬 더 넓은 철학과 가치가 존재한다. 
그리고 누가 얼마나 농도짙은 삶을 살았느냐가 시간보다 많은 것을 품는다. 

잊지말자.

…

그리고 정보 전달은 부지런히하되 말수를 더 줄여야겠다. 물어보면 대답하고 주로 듣는 사람이 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중이다.

나도 모르게 방언이 터질때가 문제. ㅎㅎ 

2018/12/14

쓸개빠진 사람

며칠전 나의 수십년 친우가 몇번 배가 아파 응급실에 간 이후 담낭 제거 수술을 했다.
임신중에 배가 아파 몇번을 가서 상당히 걱정했는데 알고보니 담낭 결석이었다고 한다.

아산병원 입원실에 들러 수술 준비중인 친구를 만났다.

"야, 이제 쓸개빠져서 회사 더 잘 다니겠네."

그리고 우리는 잘되었다며 신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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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회사(=삼성전자 연구소)를 다니기 시작했을때는 주변 모든것이 전투의 대상이었다.
일도 어렵고 (시스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직업이었음) 층층 쌓인 위계 아래서 주어지는 태스크의 난이도와 경중에 상관없이 그 사람들이 정해주는 일정에 맞춰서 완료를 해야했는데, 가방끈도 짧고 여자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안될것 같아도 되게 만들어야만 했다.

어떻게 박사학위를 마쳤나 싶을정도로 머리나쁘던 책임급 연구원들과 내부는 모르고 일정만 큰소리치던 수석들이 매우 한심하고 하루에도 열두번씩 줘 패면서 '니가 해보라'고 하고 싶었는데 그 울분을 누르고 일을 하려니 참 죽을맛이었다.

사정 모르는 사람들이 말하길, 간도 쓸개도 다 빼놓고 영혼없이 그냥 맞춰주면서 '편히 살라'고 했다.

일이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 0과 1의 상태밖에 없는데 내 간과 쓸개가 무슨 용도가 있나. 머리와 손가락 열개만 있으면 되는것이지. 참 속모르고 말쉽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5년을 버티고 나니 일을 덜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요령이 조금 생겼는데, 그 뒤로 생기기 시작한 문제는 말그대로 간과 쓸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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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회사를 거쳐오고 크고작은 프로젝트들을 하면서 엔지니어로서의 어려운 점, 선배로서의 어려운 점, 위계질서 하층민으로서의 어려운 점을 거쳤다.

지금 나를 채용해준 회사는 참 좋은 회사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사람들이 상식적이고 좋은 사람들이라 그렇기도 하고 출근하면서 간 쓸개를 두고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종종, 고위급이 보내는 메일에 혈압이 오르는 상황을 만나면 심호흡을 한다.

'거 참 비아냥대는 양반이군. 기운 빼려는 작전인게야. 허허허. 아 쓸개두고오길 잘했다. '

그리고 옆자리 뒷자리에 술마실일이 있을때만 잠시 간을 꺼내쓰는 쓸개빠진 사람들이 열심히 타이핑을 하고 있다.

2018/12/05

관행에 의해 돌아가는 것들

적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스템보다는 관행에 의해 돌아가는군.'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프로세스는 시스템에 정해져있고 누구나 그에 따라 진행하면 일이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기존에 하던 사람이 도제식으로 알려주지 않으면 알수 없는 그런 업무 처리 과정들.

이런 것이 카르텔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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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업무를 하다보면 여러조직(회사 내외부)과 함께 일 할 때가 있다.
어느 순서까지는 누구와 상의를 하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누구와 상의하고 최종 결재는 어떻게 진행하고 하는 상식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야기를 할 때는 누구를 빼고, 어떤 이야기를 할 때는 누가 기분나빠하지 않도록 어떻게 한다는게 있다.
당연히 나는 모르는 일이다. 내 상식선에서는 큰돈이 왔다갔다 하고 법인이라는 가상의 인격체를 대하는 일이기 때문에 '뒤로 사바사바'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실례이며 정보는 공유하고 '깔만큼 까고' 일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게 아니라니.
결재 프로세스는 결재창을 켜면 내 머릿속에서 누구를 꺼내야할지 고민하는게 아니라 세팅이 되어 있거나 최소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결재창 결재라인은 텅비어 있다. 이 동네 '쪼렙'인 나는 또 물어봐야 한다. 묻는게 뭐 대수겠냐만 이것도 민폐라면 민폐다.

회사에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꿰고 있기라도 해야하나.
미리 밥을 먹고 인사를 하고 안면을 트고 일하도록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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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는 일' 이라는 말을 참 오래도록 들어왔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비즈니스 매너도 갖추고 감정노동도 하고 가끔은 진심으로 친우로 지내고 싶은 동료도 만난다.

그런데 개개인을 알고 조직에 오래묵은 사람이라야 일이 원활하게 된다면, 시스템이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밥을 같이 먹지 않으면 업무가 잘 진행이 안된다면 그것도 좀 미개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작용이 커지면 친목질로 비효율만 커지는 동호회가 될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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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고 스타트업이고 대기업이고(순서는 내가 있었던 조직이 대략 이러해서 조정해 봄) 참 다른 형태의 관행과 친목과 비효율이 몇몇 주도하는 자에 의해 생기는 걸 보면 저게 인간 본성인가 싶기도 하다. (아니, 누가 그런짓을 주도해도 안따라가면 되잖아!!)

2018/12/03

하고자 하면 장애물이 많을것이요...

하고자 하지 않으면 월급이 제때 나올 것이다...

...

아, 월급쟁이는 또 의욕 하나가 사라졌다.

...

어느 한쪽에서는 동기부여를 위해 갖은 노력을 할 것이고, 그 외는 기운 빠지는 일만 가득할 것이다.

...

어쩌면 이것은 월급쟁이들의 바이블과 같은 시츄에이션인가.

...

하려고 하면 할 수록 더 막히는게 많은 느낌이며 부스팅 인자는 셀프모티베이션 하나만 있으니, 나만 참으면 모두에게 평화가 오리라.

나는 월급쟁이다.. 나는 월급쟁이다.. 나는 투명한 월급쟁이다..

2018/12/02

조깅을 권유받다

멘탈 브레이크다운 상태였을때 조깅을 권유받았는데,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농도를 보면 조깅을 하다가는 폐는 물론이고 뇌까지 먼지가 침투해서 죽을 것 같다.
나를 흔적없이 살해하고자 하는 의도였나.
특히 미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조깅 자랑, 야외 운동자랑하는 분들 주위에 꽤 있는데 거기서는 그래도 되지만 서울은 그러면 큰 일 날 것 같다.

상대방의 상황과 환경을 이해하고 조언하자.

---

그게 아니라면 듣고 공감만 해 줍시다.

조깅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2018/11/24

새 종목에 도전중이다 - 수영일기

요가는 정말 좋은 운동이었다.

지금은 요가를 하지 않지만, 스트레스성 폭식(이라고 부르는게 정말 있다면)으로 15kg 가량이 갑자기 불어난 후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들었을때,
1. 일어설 수 있을 정도의 근육과 체력은 만들어줬고,
2. 주 3회 규칙적인 운동을 위해 노력하도록 만들어줬고,
3. 땀을 흘리고 난 후 개운함을 알게했다.

약간 지겨워지기도 했고 다리도 조금 다쳤고, 실력이 향상되는게 보이지 않아서 다음 종목으로 움직였다.
난 정말, 열심히 하면 유연성도 늘고 근육도 팍팍 붙을줄 알았는데, 임계치를 넘기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무리했다가 허리와 다리에 문제가 생겨서 정형외과를 몇 주 다닌 후 그만두기로 했다.

내내 마음의 짐처럼 '수영 못하는 맥주병' 이란 말을 되뇌었는데 해결하러 나섰다.
수영 강습을 등록했다. 물에 들어가면 다리에 무리가 덜 간다.

첫번째는 공공의 목적으로 운영되는 스포츠센터였다.
시설은 깨끗하고 좋았는데 학생수가 많았고 유아 풀에서조차도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했고, 선생님이 뭘 하라고 가르쳐놓고 가버려서 배울수가 없었다.
게다가 몸살감기로 심하게 아파서 내리 2주를 빠졌다.

두번째 찾은 곳은 집에서 마을버스로 이동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스포츠센터로 조금 더 비싸고 아주 낡았고, 물도 깨끗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초짜부터 물에 처넣다시피(?) 해서 가르쳐준 덕에 며칠만에 킥판 잡고 자유형, 시작한 달 막바지에 자유형이 가능해졌다. 물은 많이 먹었다. 우웩.

유아풀이 없어서 살아남으려면 죽어라 보고 배우는 수 밖에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눈작고 개구쟁이 같이 생긴 선생님은 거진 40년이 다 되어가는 맥주병을 물에 띄우는데 성공하셨다.

원체 운동신경도 둔하고 (무용만 잘했다) 물도 무서워하고 유산소 운동 안한지도 오래되어 호흡량도 딸려서, 초반에는 남들보다 진도가 늦을 수 밖에 없었다.
잘하던 동무들은 먼저 배우라고 하고 나는 천천히 진도를 따라갔는데, 어느덧 동무들과 진도가 맞아들어갔다.

선생님도 포인트 레슨을 잘 해줬고, 나도 낯짝 두껍게 퇴근을 감행하고 최대한 출석하려고 했고, 무엇보다 유투브 동영상을 보면서 땅짚고 헤엄치며 연습한 영향도 컸다.

가장 많은 도움이 되었던 영상은 'lovely swimmer' 라는 선생님의 영상.

물에 들어가 있으니 땀이 흐르는게 느껴지지 않아 얼마나 운동이 되는지 몰랐는데, 시작할 때는 추워서 덜덜 떨다가 두바퀴만 돌고나면 열이 오르고, 나중에는 샤워하고 밖에 나왔는데도 11월 말인 지금 등에 땀이 흐른다.
다리도 후들거리고, 시작한지 3개월차, 제대로 한지 2개월차인 지금 체중이 3-4kg 정도 줄어서 약간 몸이 가벼워졌다.

살찐 몸을 누구한테 보여주기도 싫었고, 몸에 맞는 수영복도 없어서 제일 큰 사이즈를 낑낑대며 입는것도 불편했지만 시작하길 잘 한것 같다.
짧은 거리는 수영으로 빠져나올수도 있으니, 이제 위험을 피하는 재주가 +1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곧 나이 마흔이 된다. 철인3종경기에 도전할 각오는 없지만 직립보행은 오래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운동으로 리프레시하며 내 정신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은 노력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