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취학 아동이던 시절에 나는 딱히 동네 아이들과 노는 것이 즐겁지는 않았던 것 같다.
너무 유치했고, 소란했다.
어릴 때 많이 아팠다고하고 거의 병원을 밥먹듯 드나들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엄마는 나를 아예 뛰지도 못하게 했다. 조금만 상태가 좋지 않으면 물도 삼키지 못할 만큼 편도가 부어올랐고 고열이 끓었다. 유치원에 갈 때도 원복 치마가 아닌 골덴바지를 입혀 보냈다. 그때 사진을 보면 어떻게 어린이가 저렇게 촌스럽고 못생겼나 싶을 정도다.
그러다보니 할 수 있는 것은 구석 다락방에 올라가 쌓여있는 책을 읽는 것 뿐이었다.
어디선가 얻어온 책곰팡이 냄새가 나는 책, 전집, 세월지난 잡지들이었다. 활자중독에 가까워서 읽은 책을 외울 때까지 다시 읽는 것은 물론이고 읽을 것이 없으면 전화번호부라도 읽었다. 용돈을 모아 내가 스스로 책을 살 수 있을때까지 다락은 얻어온 책들로만 채워졌다.
다락은 조용했고, 방해받지 않았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우리말로 된 모든 책을 읽다보니 관심사도 넓어지고, 아는 것도 많아졌다. 어린이는 어린이 책을 읽어야한다? 사치였다. 어린이 책은 새로 사기에는 너무 비쌌다. 백과사전을 포함해 닥치는대로 읽었다.
이때문에 발생한 부작용은, 약간의 염세적 성향, 반항심,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지적 우월감, 그리고 주변이 견딜수 없이 유치해진 것이다.
아무튼 다독한 덕분에 일찍부터 글을 쓰기도 했는데, ‘계몽사 전국 백일장’이 내가 최초로 참가한 글쓰기 경연이었던 것 같다. 그것을 시작으로 초, 중, 고 내내 시, 웅변문, 산문, 독후감을 쓰고 수상했다. 그 뒤로는 해 볼일이 없었지만 전국 1등도 했다. 집에 상장과 트로피가 쌓여갔다.
성적으로 전교1등을 하면 부모님이 반겼다. 전교생 앞에서 상을 받으니 자랑할 거리도 되고, ‘내가 애를 잘 키웠다.’는 것에 그만한 증거가 없었을테니까. 그런데 그 이외의 수상은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내가 ‘또’ 전국 백일장에서 수상을 해 상장을 받아 내밀자, 엄마는 상장을 방바닥에 던졌다.
“아빠 보여드리게 놔둬라. 공부나 똑바로 하지.”
포항 모처에서 주최한 그 백일장은 심사위원들이 지역편파 심사를 하여 포항지역 학생들에게 상을 몰아주고 그 외 지역은 간신히 한두작품만 선정해주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또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는 아주 귀한 상이었다.
엄마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저학년때는 ‘참잘했어요’ 도장에 집착을 하고, 그 이후에는 점수와 등수에 집착을 했다. 아빠는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입장이었던 것 같다. 동의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행동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실적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나와 내 동생의 성적 밖에 없었던게 아닌가 싶다.
상장이 방바닥에 던져지고, 공부외 모든 활동이 거부당하면 꺾일 법도 한데, 나는 정말 줄기차게 글을 쓰고, 문예부 활동을 하고, 과학경시대회를 나가고, 동급생의 학생회장 선거 캠페인을 도왔다. 그리고 책을 죽어라 읽었다.
엄마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는, 아주 짜증난 표정으로 나에게,
“너는 책을 그만큼 읽는애가 왜그러냐?”
라는 말을 가끔 했다. 책을 읽는 아이는, 공손하고, 예의바르고, 생각이 깊고, 얌전하며, 엄마가 원하는 모습의 딸일 것이라 상상했겠지만, 그것은 나를 모르고, 책을 몰라 발생한 착각이었다. 책이 보여주는 세상은 다채로웠고 컸다. 알고나면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점점 더 정서적으로 독립했고, 대학시절 잠을 줄이고 회사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경제적으로도 독립해나갔다. 단단히 홀로 서고 싶었다.
더우나 추우나 단독주택 다락방에서 책만 끼고 살았던 시절이 나를 5할쯤 만들어 놓았다. 그 나머지는 세상밖에서 배운 것들이다. 나는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고 새로운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시에 다락에서 나오지 않는 나를 방해하지 않았던 것이 고맙고, 무엇보다 그런 다락을 나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해주어서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서재가 있고,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여 살고, 원하면 언제든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을 사서 볼 수있지만, 당시에 몇 번 씩 읽고 또 읽었던 그 독서의 재미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립지는 않다.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그런 재미가 있었다는 기억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