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30

힘빼고, 심호흡하고, 릴렉스

“왜 이렇게 긴장을 하고 있죠? 긴장 풀고…”

스트레칭, 웨이트 선생님이 당황스럽게 묻는다.

근육이 딱딱하게 굳고 짧아져 있다. 그리고 나는 긴장을 푸는건 어떻게 하는건지 잘 모른다.

오랜 회사 생활로 승모근이 딱딱하고 두통을 유발했다. 킥복싱을 하니 킥을 차야 하는데 다리가 안올라간다. 둔부근육이 짧아져있고 요추가 뻣뻣하다고 한다.

말이 빠른 편이다. 한 호흡에 많은 단어를 말한다.

요즘은 화상회의를 주로 하다보니 또박또박 이야기해야 해서 속도면에서는 많이 좋아졌다고 볼 수 있지만, 정확히 전달을 하려다 보니 그 또한 긴장상태의 연극배우처럼 내지르는 발성이 된다. 게다가 난 경상북도 사투리 억양을 구사하는 관계로 여차하면 화가 난 것으로 들리기 십상이다.

정확하게, 빠른 호흡으로 말하지 않으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았고 실제로 그랬다. 사나워야 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나. 적어도 내 스스로 그런 모양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그러다보니 업무 능력 면에서는 꽤 인정을 받았고, 운동은 적어도 성실함 면에서는 아무도 나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지만, 각종 부작용도 겪어야 한다. 대체로 굳어있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 특히 후배들이 어려워할 때가 있다. 윗사람들은 어려워하거나 말거나 내 관심사가 아니므로 그들이 알아서 할일이다.

나는 긴장을 푸는 법을 잊었다. 태어날 때부터 한 번도 연습한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일을 시작하면 긴장상태로 몰아치는 것이 미덕인 줄로 알았다. 어쩐지 늘어져있는 모양은 게으름인 것만 같다. 힘을 주고 빼는 것을 못하다 보니 수영을 할 때, 맨몸으로 떠서 전진하는데만 한참이 걸렸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개발자, 엔지니어로 오랜 기간을 살았는데, 문제가 하나 생기면 밤을 새도 해결이 안 될 수 있다. 그러나 선택지는 없었다. 밤샌다고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밤새는 정성도 없이 뭐가 안되니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근래 (코로나19로 쉬었던 2년을 제외하고)몇 년은 킥복싱을 하고 있는데 격투운동이다보니 치고박고 기세 싸움을 할 때가 많다. 운동신경이 둔해도 너무 둔해서 엄두가 나지를 않아 스파링도 한참 늦게 시작했다. 상대와 때리고 맞고 하면서 때려도 들어가고, 맞아도 들어가고,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맺집이 많이 필요하다.

‘나이도, 썩어빠진 운동신경도 다 핑계니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덤비자.’ 이게 내 주 마음가짐이 되었다.

작년 킥복싱 경기를 하느라 체급조정을 했더니 체중이 60kg~47kg 을 왔다갔다했다. 살 빼는 건 쉬운 일이었다. 안먹으면 된다. 이후 벌크업 한답시고 근육 운동을 하며 신나게 먹고 지금은 다시 과체중 상태가 되었다. 빼야하면? 빼면 된다고 생각한다.

음력설을 앞두고 몸살감기가 지독하게 왔다. 쉬어야 하는데, 진통제를 종류별로 먹고 운동을 하러 갔다. 덜 움직이니 더 아픈것이라며 몰아쳤더니 결국 어제는 의사가 처방해준 링거를 꽂았다. 그 전날, 웨이트, 스트레칭 코치 선생님은 운동하러 온 나를 쫓아냈다. 이대로는 진행할 수 없다며. 이 코치 선생님은 ‘근육은 부드러워야 한다.’는 말을 나에게 처음 해 준 사람이다.

사람 의지로 안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근육은 두껍기만 해서는 안되고 부드러워야 한다는 것도 근래에 알았다.

나이를 먹으며 육체적인 성장은 멈추고 노화가 진행되지만, 정서적, 지식적인 면에서의 성장은 계속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또 배웠다. 힘빼고 지내야 하는 시간도 있다는 것을.

힘빼고, 심호흡하고, 릴렉스.

2023/01/27

엄마는 상장을 방바닥에 던지곤 했다.

미취학 아동이던 시절에 나는 딱히 동네 아이들과 노는 것이 즐겁지는 않았던 것 같다.

너무 유치했고, 소란했다.

어릴 때 많이 아팠다고하고 거의 병원을 밥먹듯 드나들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엄마는 나를 아예 뛰지도 못하게 했다. 조금만 상태가 좋지 않으면 물도 삼키지 못할 만큼 편도가 부어올랐고 고열이 끓었다. 유치원에 갈 때도 원복 치마가 아닌 골덴바지를 입혀 보냈다. 그때 사진을 보면 어떻게 어린이가 저렇게 촌스럽고 못생겼나 싶을 정도다.

그러다보니 할 수 있는 것은 구석 다락방에 올라가 쌓여있는 책을 읽는 것 뿐이었다.

어디선가 얻어온 책곰팡이 냄새가 나는 책, 전집, 세월지난 잡지들이었다. 활자중독에 가까워서 읽은 책을 외울 때까지 다시 읽는 것은 물론이고 읽을 것이 없으면 전화번호부라도 읽었다. 용돈을 모아 내가 스스로 책을 살 수 있을때까지 다락은 얻어온 책들로만 채워졌다.

다락은 조용했고, 방해받지 않았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우리말로 된 모든 책을 읽다보니 관심사도 넓어지고, 아는 것도 많아졌다. 어린이는 어린이 책을 읽어야한다? 사치였다. 어린이 책은 새로 사기에는 너무 비쌌다. 백과사전을 포함해 닥치는대로 읽었다.

이때문에 발생한 부작용은, 약간의 염세적 성향, 반항심,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지적 우월감, 그리고 주변이 견딜수 없이 유치해진 것이다.

아무튼 다독한 덕분에 일찍부터 글을 쓰기도 했는데, ‘계몽사 전국 백일장’이 내가 최초로 참가한 글쓰기 경연이었던 것 같다. 그것을 시작으로 초, 중, 고 내내 시, 웅변문, 산문, 독후감을 쓰고 수상했다. 그 뒤로는 해 볼일이 없었지만 전국 1등도 했다. 집에 상장과 트로피가 쌓여갔다.

성적으로 전교1등을 하면 부모님이 반겼다. 전교생 앞에서 상을 받으니 자랑할 거리도 되고, ‘내가 애를 잘 키웠다.’는 것에 그만한 증거가 없었을테니까. 그런데 그 이외의 수상은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내가 ‘또’ 전국 백일장에서 수상을 해 상장을 받아 내밀자, 엄마는 상장을 방바닥에 던졌다.

“아빠 보여드리게 놔둬라. 공부나 똑바로 하지.”

포항 모처에서 주최한 그 백일장은 심사위원들이 지역편파 심사를 하여 포항지역 학생들에게 상을 몰아주고 그 외 지역은 간신히 한두작품만 선정해주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또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는 아주 귀한 상이었다.

엄마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저학년때는 ‘참잘했어요’ 도장에 집착을 하고, 그 이후에는 점수와 등수에 집착을 했다. 아빠는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입장이었던 것 같다. 동의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행동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실적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나와 내 동생의 성적 밖에 없었던게 아닌가 싶다.

상장이 방바닥에 던져지고, 공부외 모든 활동이 거부당하면 꺾일 법도 한데, 나는 정말 줄기차게 글을 쓰고, 문예부 활동을 하고, 과학경시대회를 나가고, 동급생의 학생회장 선거 캠페인을 도왔다. 그리고 책을 죽어라 읽었다.

엄마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는, 아주 짜증난 표정으로 나에게,

“너는 책을 그만큼 읽는애가 왜그러냐?”

라는 말을 가끔 했다. 책을 읽는 아이는, 공손하고, 예의바르고, 생각이 깊고, 얌전하며, 엄마가 원하는 모습의 딸일 것이라 상상했겠지만, 그것은 나를 모르고, 책을 몰라 발생한 착각이었다. 책이 보여주는 세상은 다채로웠고 컸다. 알고나면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점점 더 정서적으로 독립했고, 대학시절 잠을 줄이고 회사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경제적으로도 독립해나갔다. 단단히 홀로 서고 싶었다.

더우나 추우나 단독주택 다락방에서 책만 끼고 살았던 시절이 나를 5할쯤 만들어 놓았다. 그 나머지는 세상밖에서 배운 것들이다. 나는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고 새로운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시에 다락에서 나오지 않는 나를 방해하지 않았던 것이 고맙고, 무엇보다 그런 다락을 나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해주어서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서재가 있고,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여 살고, 원하면 언제든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을 사서 볼 수있지만, 당시에 몇 번 씩 읽고 또 읽었던 그 독서의 재미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립지는 않다.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그런 재미가 있었다는 기억으로 충분하다.

2023/01/24

우리들의 시상식

사건의 발단은 매우 단순했다.

같이 운동하는 체육관에 자영업자 아가씨 하나가 ‘우리도 시상식 같은게 있으면 좋겠다.’라고 한마디를 했을 뿐이다. (이하 ‘초미녀’ 라고 칭하겠다.)

자영업자도 월급쟁이도 일상에서 칭찬을 받거나 상을 받는 일은 매우 드물다. 잘했다는 말한마디 듣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 시점에 나는 매우 바빴다. 회사 업무가 쌓여있었고, 마감해야 할 서류도 많았다. 재택근무 중이나 온라인 미팅이 너무 많았는데, 초미녀의 아쉬워하는 한마디에 미팅 사이사이 쉬는 시간에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먼저 간단한 앙케이트를 준비했다. ‘우리 중에 아직은 어색하지만 가장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가장 귀욤뽀짝한 사람은?’ 따위의 시덥잖으나 애정을 담을 수 있는 질문과, 몇개의 주관식 질문으로 폼을 완성했다. 앙케이트 폼을 그룹창에 올리자, 그때부터 분위기는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결과 공유는 사흘후 주말로 예고 했으나 모두들 답변을 굉장히 빨리 마치고 결과를 기다렸다. 결국 당일 저녁에 결과는 공지하였다. 동시에 시상식 일정도 공지했다. 이사를 하면서 체육관을 옮긴 동무까지 모두 참석을 약속했다.

그 다음으로 금박 상장, 미니 트로피, 미인상을 수상한 친구들을 위한 왕관과 보석이 잔뜩 박힌 장식봉, 조화로 만든 꽃다발, 화환, 신권 천원을 넣은 복돈 봉투 등 필요한 모든 것을 세심하게 준비했다. 오로지 내 생각은, 장난스럽지만 시상식은 시상식답게 꾸미는데 집중했다. 업무는 업무대로 지장없이 해야했기 때문에 야간까지 준비는 이어졌다.

앙케이트는 모두에게 돌렸으나 상의 이름을 짓고 상장에 들어가는 글귀는 모두 나의 몫이었다. 모두가 칭찬받게 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장점을 간결하고 재미난 문장으로 만들어서 상장에 넣을 수 있을지가 주로 고민했던 부분이다. 시상식 당일 아침에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시상식은 저녁 운동이 끝난 후 근처 족발집에서 이루어졌다. 그 족발집은 음식이 맛있고, 홀이 작았다. 마침 다른 손님들도 없어서 우리끼리 시상식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마지막 수업을 마친 관장님까지 도착을 하고 시상식은 시작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호명하고 상 이름을 읽고, 상장 내용을 읽은 후 부상과 함께 시상했다.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2023 연초연예대상’ 시상식은 너무나 성공적이었고, 저마다 친구들의 칭찬을 잔뜩 받았으며 맛있게 먹고, 기분좋게 그날을 마무리 했다.

이 모든 작업을 완수하는데 걸린 시간은 단 이틀.

내가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지금은 ‘기획자’라고 칭하고 다니는데, 내가 가장 기획자다운 순간이었다.

재능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동무가 내 사진을 합성해 위대한 개츠비를 만들어주었다. 파티를 열고 모두를 즐겁게 해 주어서 고맙다는 의미였다. 우리는 잊을만 하면 다시 한번 앙케이트를 하고, 또 새로운 칭찬거리를 찾아 낼 것이다. 그리고 또 상을 줄것이다.

그 누가 주는 상보다, 친구들이 주는 상이 소중하다.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동무들과 함께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