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의 모든것이 느려지거나 멈췄다.
'코로나 시대의 무엇무엇' 이라며 사람들은 농담을 한다.
바이러스 모양이 코로나의 형태와 닮았다고 코로나 바이러스, 그 중에서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불리다가 COVID-19로 통일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부르고 싶은대로 부른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라는 작품을 읽어 보지는 못했어도 제목은 한번쯤 들어봤을테니 역시 귀에 익은대로 아무렇게나 붙인다.
이 '코로나 시대'에 모든 것이 느리고 제한적이다.
되도록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고,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며,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가지 말라는 것이 일반적인 가이드다.
그런데, 사람 만나고 이야기 듣는데서 내 일이 시작되는 것인데, 내 직업의 현재 모습이 매우 위태롭다.
느린 것을 받아들이고, 일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노력을 하며 보충하려 한다.
불안하다고 없는 것을 끌어다 붙이거나, 안해도 되는 것을 하는 '보여주기' 노력만큼 쓸데 없는 짓도 없으며, 이 불안한 시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미팅을 다니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굳이 성실함을 어필하고 싶지 않다면 모두를 위해 자제하는 것이 맞지 않나.
화상미팅을 하면 정리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무능력이 현격히 드러난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상중하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차라리 잘 됐다 싶다.
어쩔수 없이 대면 서비스를 해야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아니라면 모두의 위험도를 낮춰줄 필요는 있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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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실컷하고 어필을 못해서 손해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때도 있었다.
성과물을 잘 정리하고 보여주는 것도 업무 능력으로 평가가 되는데, 그걸 못해서 헤매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잘 못한다.
엔지니어 시절, 난 그게 참 힘들었고, 일은 실컷해놓고 돌아보면 뭘 했는지 기억조차 못하는게 참 한심했다.
그리고 내가 잘 하고 있으니 평가는 알아서 해줘야 할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를 참 많이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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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선수범' 같은 말같지도 않은 사명감으로 일을 참 요란하게 했던 때가 있었다.
이메일이 오면 빠르게 반응했고, 쉬지 않고 생각하고 액션아이템을 뽑아냈으며 또 그것을 공유했다.
밤도, 아침도, 주말도 없이 뭔가를 뽑아내고 모두가 알 수 있게 공유했다.
보는 사람은 숨이 막혔을 것 같다.
그렇다고 죽어라 일하는 사람을 비난 할 수도 없으니 속으로 얼마나 불편들 했을까.
그저 해 놓고 필요한 만큼 공유하고, 결과물을 나눠줄 수도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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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절미하고,
... 보여주기식 일하기는 그만합시다.
나도 이제 늘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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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없다. 글 정리해서 쓰는 것도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