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차는 범퍼가 일부 찢어졌고 지금 수리중이다.
렌트를 하지 않았기때문에 일주일간은 뚜벅이 신세다.
시간도 뺏기고 이제 1년 반 된 차가 상해서 속도 상하지만, 몇가지 멘탈에 스크래치 나는 상황을 제외하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며 2차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크게 안도하고 있다.
고속도로에서 주행하던 트럭의 바퀴가 터지거나,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알고있다.
상황을 자세히 풀어본다. 도로가 항상 안전하지는 않으므로 글을 읽는 분께서는 섀도우복싱처럼 마음으로 연습해보시면 좋겠다.
경주에서 오전에 출발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온 후 경부고속을 타고 올라가다가 상주영천간 고속도로로 옮겨탔다.
평일이라 승용차가 많지는 않아서 평소 내 페이스대로 이동하고 있었다. 2차로는 거의 트럭이 점령할 정도로 많았다.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앞 유리창에 까만 직사각형의 얼룩이 맺힌게 보였다. 벌레가 창에 부딪히면서 죽은 것이 많았는데 한마리가 거슬리게 묻었다 싶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커졌다.
타이어였다.
1초가 안되는 시간동안 빠르게 몇가지 계산을 하고 내가 내린 결론은, 완전히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바퀴를 쳐내야겠다는 것이었다. 충분한 시간이 있으면 다른 결론을 낼수도 있겠지만 저 순간은 그랬다.
이때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1. 빨리 2차로로 피한다.
2. 급정차한다.
그런데 고속도로 위였고 모두 고속주행중이다. 거친 트럭도 있고 성질급한 승용차량이나 RV 차량도 있다.
도로에 아무 것도 없다가 갑자기 옆이나 뒤에서 나타난 차가 있어서 '언제 따라왔지?' 할때도 많다.
1번 방법은 옆차량과 충돌 가능성이 있어서 위험할 수 있다. 뒷차가 내 차에 가려서 장애물을 못보다가 내가 비키면서 갑자기 장애물을 마주치게 될 수도 있다. 2번 방법은 내가 정차한다고 굴러오던 바퀴가 멈출 것도 아니고, 뒷차량이 고속주행중이라면 추돌 할 수도 있다.
당장 내 뒤에 차가 없어도 굴러가던 바퀴가 도로 한복판에 누워버리면 고속주행하던 차가 타넘고 갈 수도 있다.
본능적으로 계산을 해낸 결과는 '바퀴를 쳐서 밀어내자.' 였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 멍청한 것 같고, 또 어찌 생각하면 (그리고 결론적으로 보자면)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
속도를 줄이고 범퍼로 바퀴를 쳐냈다.
트럭은 많은 바퀴중 하나가 빠졌기 때문에 모른체로 계속 주행을 했고, 내 차가 쳐낸 바퀴는 앞으로 한참 굴러가다가 (나중에 확인한 바로) 중앙 분리대를 치고 도로를 건너 갓길 옆 도랑으로 빠졌다.
2차 사고는 없었다.
주행에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계속 주행해서 가장 먼저 나타난, 그렇지만 수십킬로는 떨어진 휴게소에 정차했다.
범퍼는 찢어져 있었고, 그릴도 손상되었고, 라이트 손상은 확신이 없었다.
우선 도로공사에 신고접수를 위해 전화를 했다. (1588-2504)
현재 위치를 확인한 후 정차한 휴게소 관리지소에 연결 --> 사고지점이 담당 지역이 아니라고 구미 지역소로 토스 --> 전화 받은 사람이 민자고속도로라 처리가 안된다고 경찰에 신고해 주겠다고 함. --> 기다릴 수는 없어서 고속도로순찰대에 바로 연락. --> 담당 경찰과 통화 --> 담당 경찰이 70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휴게소까지 이동하여 확인
이 순서로 진행되었다.
아 과정에서 운전자가 나(=여자) 인것을 확인할 때마다 '운전자가 뭘 잘못했겠지.' 하는 톤을 느꼈고, 스피커로 통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이 중간에 받아서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하면 못알아듣던 말을 알아 듣기 시작하는 매우 신기한 현상을 경험했다. 이것은 남편도 동일하게 느꼈다.
이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은 별로 없고 모두의 무의식에 여자들은 운전이 서툴다고 박혀있는 것 같았다.
- 민망한 사족을 더하자면, 나는 우수한 운전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운전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면허 번호는 99로 시작하며 (조금만 덜 게을렀더라면 98일텐데.) 귀엽게도 '초급' 레이서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다.
보조석에서 잠들어있던 남편은 내가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할때 깨서 바퀴를 쳐 낸 후 첫마디가
"왜그랬어!"
였다.
내가 트럭 타이어를 뽑은게 아니기 때문에 저 첫마디가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고 휴게소에 도착한 후부터 대략 수십시간동안 화를 냈다. 남편의 의도는, 타이어가 오는데 왜 빨리 피하지 않았냐는 것과 주위에 다른차가 없었기 때문에 옆으로 피하면 되는데 왜 피하지 않았냐는 것인데, 까만 직사각형을 보자마자 타이어임을 인식할 수 없고, 피해서는 안되는 상황이었다고 이야기 해도 이해하지는 못했다. 사고차량으로 기록이 남기 때문에 중고로 팔 때 가격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심각하게 했다. 물론 속이 쓰리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종종 떠오를때마다 '괜찮냐, 놀라지 않았냐'가 아니라 '왜그랬어!' 라고 말 한 것을 후회하게 해주겠다.
귀책사유가 나에게 있다고 오해할 소지가 있어서 블랙박스 영상에서 음향은 제거했다. 현재까지 아는바로는 음향제거는 관계없다고 한다.
통화하는 과정에서 심적불편함은 있었지만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두분은 프로페셔널하게 대응해주었다. 다친 곳이 없는지 먼저 확인했고,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도 같이 확인해주었다.
블랙박스에 찍힌 차량번호를 식별하는데 어려움은 있었지만 가지고 있던 랩탑으로 화면을 키워서 간신히 식별해냈고, 경찰에 접수된 '정차 수리중인 트럭' 번호와 일치한 것을 확인했다.
이때 문제의 원인이 된 차량을 찾지 못하면 내가 자비를 들여 모든 수리를 해야하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면 반드시 보조석에 앉은 사람이 사진을 찍거나 운전자가 번호를 기억해야 한다. 경황이 없어서 놓치면 큰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
경찰이 전화를 걸어줘서 트럭 운전자와 통화를 마쳤다. 역시 우리가 다치지 않았는지 확인했고,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회사의 보험사에서 이후 처리를 해 줄것이라고 했다. 차량 손상 부위 사진과 블랙박스 영상을 보냈다.
경찰은 '상대방의 문제로 발생한 사고기때문에 100% 과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보험사에서 과실을 일부 나누려고 할 수도 있다. 과실의 정도 판정은 우리가 말씀 드릴 수 없다.' 라고 미리 설명을 해 줬고, 알고 있는 내용이라서 알겠다, 고맙다 인사를 나눈 후 각자 출발했다.
그리고 다음날, 차량을 성수동 센터로 가져갔다.
트럭회사의 보험사라고 부르는 곳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보험회사는 아니고 공제조합이었는데, 많은 상황을 겪어오다보니 우리가 어느 센터로 가는지 이미 알고 있었고 성수동 수리 담당 과장도 책상위의 연락처 리스트에서 찾아서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나만 생소한 상황이고 모두 익숙한 것 같다.
교통비로 지급 받을 것인지, 렌트를 할 것인지 묻길래, 여행중도 아닌데 조금 불편하게 며칠 버티면 될 것 같아서 교통비로 받겠다고 했다. (좀 속물같지만 한 급 올려 렌트해주면 모를까, 잘 받아봐야 G모 차량 신형을 줄 것 같아서 안받겠다고 한 것도 있다. )
우리가 보조적으로 카메라를 달아둔 것이 있는데, 이 장치는 까다로운 튜닝 과정이 있어서 비용이 발생하며 역시 배상이 필요함을 언급했다.
트럭 과실 100%로 진행되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
문제의 영상이다.
시간을 뺏겼고, 차가 상했고, 이래저래 불편하지만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라 위안중이다.
그냥 피했으면, 내 캠돌이는 계속 새차일텐데.. 속이 쓰리다.
